
국시대 오다 노부나가 화기 유입
일본 전국시대로 알려진 센고쿠 시대 때 오다 노부나가는 유럽의 기술과 화기를 사용하여 다른 많은 다이묘들을 정복했습니다. 1582년 오다 노부나가가 아케치 미쓰히데어 의해 암살된 후 그의 후계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0년 일본을 통일하고 1592년과 1597년 두 차례에 걸쳐 임진왜란을 일으켰습니다. 조선을 침략 전에 히데요시는 침략에 동참하기 위해 포르투갈 갤런을 고용하려고 했지만 포르투갈인들은 이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한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키가하라 전투를 통해 전국의 패권을 쥐었고, 이를 기반으로 에도 막부를 열게 됩니다. 1603년 에도에 수립된 도쿠가와 막부는 자율적인 다이묘들을 통제하기 위한 규범으로 무가제 법도를 포함한 조치들을 시행하였고 아울러, 금교령을 시행하며 일본 내의 불교, 신토와 마찰을 빚을 것을 우려해 기독교를 금지시켰습니다. 1639년에는 지방 다이묘들의 개인적인 무역을 금지시키기 위해 쇄국 정책을 시행했는데 쇄국 정책은 2세기 반에 걸쳐 이어졌습니다. 외국 세력의 정치적 입지를 제한하려는 목적을 가진 에도 막부의 쇄국 정책에 따라 포르투갈의 영향력은 일본 영토에 상륙한 지 100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한편, 전국시대가 시작될 무렵의 오닌의 난부터 꾾이지 않는 일본 내의 전쟁 시기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경제적 번영은 무로마치 시대에도 지속되었습니다. 13세기 말에 6백만 명이었던 일보의 인구는 1450년 무렵에 이르러 천만 명에 달하였고 중국 조선과의 상당한 교역을 포함하여, 상업이 번성했습니다. 다이묘를 비롯한 일본 내 기타 세력들은 자신들만의 주화를 주조했기 때문에 일본은 물물교환 기반에서 통화 기반 경제로 전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 동안, 수묵화, 이케바나 꽃꽂이, 다도, 일본식 정원, 분재, 노우 극장을 포함한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예술 형식들이 발전했습니다. 무로마치 막부 8대 아시카가 쇼군인 요시마사는 정치적, 군사적으로 무능한 지도자였지만 그는 이러한 문화 발전 진흥에 있어서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아시카가 요시마사는 1397년, 킨카쿠 절, 또는 금각사라고도 불리는 유명한 절을 교토에 건립했습니다.
아즈치-모모야마 시대(1568년 ~ 1600년)
앞서, 일본의 유럽과의 접촉을 주제로 한 내용을 다루다 보니 17세기의 에도 막부 쇄국 정책까지 진행했는데 잠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16세기 중후반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를 살펴보겠습니다.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는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권을 장악한 시대를 말합니다. 16세기 후반기 동안, 일본은 두 명의 강력한 군주인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서서히 재통합되었습니다. 이시대에는 아즈치 성의 오다 노부나가와 모모야마 성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나누어졌습니다. 노부나가는 원래 오와리라는 작은 지역의 다이묘였습니다. 1560년 오케하자마 전투 중 노부나가의 군대는 당시 강력했던 다이묘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이끄는 대군을 여러 차례 물리치면서 단숨에 혜성처럼 등장했습니다. 노부나가는 전략적 리더십과 대담함으로 유명하였고, 자신의 적 세력인 불교를 향한 분노를 선동하는 데 있어 유럽 무기상들과 강력한 유대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기독교를 장려했습니다.
그는 다른 군대에 비해 앞서, 머스킷 소총을 갖추며 혁신적인 전술로 훈련을 시켰고 센고쿠 시대의 수많은 다이묘들 중에 압도적이 실력을 보였습니다. 또한 기존의 관념을 깨는데도 거침이 없었는데 소작농 출신의 하인이었다가 최고 무장이 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비롯하여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재능있는 사람들을 기용했습니다.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는 노부나가가 교토를 함락하고 아시카가 막부 시대를 효과적으로 종식시킨 1568년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전 일본을 재통일하겠다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지만 1582년 그의 무장 중 한 명인 아케치 미쓰히데가 진지에서 갑작스럽게 일으킨 공격으로 사망했습니다. 히데요시는 아케치의 반란을 무너뜨리며 노부나가의 원수를 갚았으며 이에 따라 노부나가의 계승자로서 두각을 드러냈습니다. 이어 히데요시는 시코쿠, 규슈, 그리고 일본 동부의 호조 가문 땅들을 정복하며 일본의 재통일을 완성하게 됩니다. 그는 소작농의 무기 몰수, 다이묘들에 대한 새로운 제한조치, 기독교 박해, 철저한 토지 조사, 또한 소작농과 사무라이가 사회 계급을 바꾸지 못하도록 금지한 새로운 법을 포함하여 일본 사회에 전면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히데요시의 토지 조사는 땅을 경작하는 모든 사람을 평민으로 지정했는데, 이것은 대부분 일본 노예들에게 실질적으로 자유를 부여한 조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 히데요시는 중국 정북을 꿈꾸며 1592년에 시작된 두 번의 거대한 조선 침략에 착수했습니다. 한반도에서 벌어진 임진왜란에서, 이순신 장군의 활약으로 인해 히데요시는 조선군을 물리치지 못했으며, 1598년 히데요시가 사망함에 따라 전쟁은 끝이 났습니다. 새로운 왕조를 세우려는 희망에 따라 히데요시는 가장 신뢰하는 부하들에게 갓 태어난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도록 요구했습니다. 이러한 맹세에도 불구하고 히데요시의 사망 직후 히데요리의 동맹군과 과거 히데요시의 동지였던 다이묘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충성하는 세력 사이에서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머쥐었으며, 이에 따라 268년 동안 이어진 도쿠가와 막부의 통치 시대를 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