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니 비사우로 알려진 국가의 정식 명칭은 기니 비사우 공화국입니다. 기니비사우의 이름은 수도 비사우에서 따왔으며 비슷한 이름의 국가인 기니, 적도 기니, 파푸아뉴기니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기니비사우는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국가로 아프리카의 서해안에 면하면서 북쪽으로는 세네갈, 남쪽으로는 기니와 인접해 있습니다. 인구는 2019년 기준으로 약 20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이는 대한민국의 충청남도 인구수와 비슷합니다. 기니비사우의 1년 총 GDP는 2017년 기준 약 13억 달러로 세계 168위로 비슷한 수준의 국가로는 세이셸, 솔로몬제도를 꼽을 수 있습니다. 기니비사우의 인구구성은 아프리카 흑인이 대부분이며, 그 외에 포르투갈 식민 시절 후손인 백인과 발란테종의 인종이 거주합니다. 기니비사우의 공용어는 포르투갈어와 여러 아프리카어가 혼합된 크레올어가 쓰입니다.
기니비사우는 1446년 포르투갈인에 의해 발견되어 포르투갈 최초의 해외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17,18세기 포르투갈은 기니비사우와 인접한 대서양의 섬나라 카보 베르데에 노예무역의 거점을 두고 기니비사우 지역에서도 노예무역을 활발하게 전개했습니다. 기니비사우는 1879년 이후에는 공식적으로 포르투갈령 기니가 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범아프리카 민족주의의 영향으로 아프리카 각국이 독립하면서 식민지 독립운동의 분위기가 고조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기니비사우에도 1956년에 독립운동 단체인 기니비사우-카보베르데 아프리카 독립당이 결성되었는데 이 단체를 중심으로 1963년부터 본격적으로 포르투갈로부터 독립 항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랜 기간 치열한 독립 항쟁을 전개하면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게릴라식 독립항쟁을 꾸준히 해온 기니비사우는 국경을 맞대고 있던 서아프리카 국가들의 지원과 중국, 쿠바,소련 등 공산주의권 국가들의 적극적인 원조 덕분에 포르투갈을 밀어내고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습니다.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기니비사우-카보 베르데 독립당은 1974년 9월 정식으로 독립을 성취한 뒤 함께 투쟁했던 카보 베르데와 함께 통합하려 했으나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유럽의 식민 지배에서 독립한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과 비슷하게 기니비사우 역시 독립 이후에 혼란한 시기, 무수한 쿠데타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독립 이후 정치 실권을 장악한 PAIGC는 사회주의 정치 체제를 지향했습니다. 하지만 이와 다른 노선을 취했던 전 국회의장 주앙 베르나르두 비에이라가 1980년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초대 대통령을 축출하고 정권을 잡았습니다. 그로부터 18년 뒤인 1998년 비에이라 정권에 불만을 품은 군 참모총장이었던 안수마르 마네의 반란으로 내전이 발발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혼란하고 불안정한 시기를 거친 기니비사우는 1993년부터 국가 평의회를 폐지하고 대통령제를 실시하면서 조금씩 안정적인 정국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기니비사우는 독립 이후 기니비사우-카보 베르데 아프리카 독립당 PAIGC가 정권 실권을 장악합니다. PAIGC는 지도층들이 공산주의자들로 구성되어 있어 1975년 전 국토를 국유화하고, 비동맹 중립주의를 표방했습니다. 1980년 11월 전 국회의장 주앙 비에이라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칼 브라를 추방하고 정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이후 1994년 7월 실시한 대선 및 총선에서 승리한 주앙 비에이라는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1998년 전 참모총장 안수마느 마네의 반란으로 기니비사우는 다시 한번 내전에 휩싸입니다. 정국을 혼란으로 몰아넣었던 안수마느 마네는 얼마 가지 않아 사망하고 포르투갈로 망명했던 조앙 비에이라가 돌아와 다시 정계에 복귀하게 되는데 2005년 대통령 투표에서 재선에 성공하였으나. 2009년 군인들에 의해 피살되게 됩니다. 그 후에도 기니비사우의 정치계에는 심심치 않게 정치인 피살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때문에 UN,AU 등 국제사회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2014년 유엔 안보리에서 기니비사우 헌정 질서 회복을 논하게 되고 같은 해 호세 마리오 바즈 대통령이 당선됩니다. 이후로 기니비사우는 범인류적인 차원에서 포괄적인 기업 및 경제개발을 위한 국제사회의 체계적인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기니비사우는 세계 빈국 중 하나로 잦은 정치 내전으로 인해 경제가 더욱 피폐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