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란 어디인가?
이탈리아 여행 중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반드시 들려야 하는 도시 피렌체는 르네상스 시대의 분위기를 느끼고자 하는 관광객들에게 인기 만점인 도시입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낭만과 예술의 도시 피렌체는 중세 유럽 금융의 중심지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발원지이기도 합니다.
중세 초기의 교회 산마르코 수도원에서 10년 동안 지내며, 약 50폭에 달하는 프레스코화를 남겼던 프라 안젤리코의 작품들을 알아보겠습니다. 프라 안젤리코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1395년~1455년까지 살았고, 화가이자 도미니크수도회 수도사로 꼼꼼한 묘사로 성서의 일화를 주로 그림으로 나타냈습니다. 그의 본명은 구이도 디 페어트로로 청년기에 삽화가로 도제 수업을 받고 30대가 될 무렵인 1417년까지는 훌륭한 화가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후 수도원 생활을 하며, 일생을 경건한 그리스도 신앙의 표현에 헌신하였으며 천사와 같은 수도사라는 경의를 담은 의미로 베아토 프라 안젤리코로 불렸습니다. 산 마르코 수도원 수도승들의 방과 각 복도 끝마다 그려진 벽화에서는 프라 안젤리코의 진면목을 보여주는데 프레스코 화법을 채택하여 그림의 주제를 단순하면서도 풍부한 입체감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수태고지
이 작품은 산 마르코 수도원 북쪽 복도에는 수도사 프라 안젤리코가 그린 프레스코화 수태고지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수태고지란 신약성서에 기록된 예수 탄생의 일화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 그리스도 잉태를 예고한 사간을 말합니다. 고대 사회로부터 중세 시대 대부분의 사람이 문맹일 때 성서는 라틴어 위주로 존재하며, 이를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화가들은 성서 속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 설명했습니다.
수태고지가 주제인 작품들에서는 백합이나 비둘기 등 많은 장치가 등장하는 데 반해, 안젤리코는 상징물은 배제하고 대신 친근감을 느낄 수 있도록 수도원을 배경으로 나타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그리스도 잉태 소식에 대한 이 장면은 도미니크 수도회에서 특히 중요한 의미로 여겨졌습니다. 중세 유럽의 스콜라 철학을 대표하는 이탈리아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수태고지의 순간에 말씀이 육신이 되었고, 이것이 구원의 역사에서 일어난 결정적인 사건이라고 보았습니다.
위 작품보다 약 10년 전에 그려진 프라 안젤리코의 또 다른 작품인 코르토나 수태고지로 성모는 신의 뜻에 순종함으로 인류를 구원한다는 뜻을 나타냅니다. 반대로 이브는 하나님의 명령에 거역함으로써 원죄를 가져왔다는 뜻을 담아, 화면 뒤쪽 장면에 낙원에서 추방되는 아담과 이브가 함께 등장합니다. 또한 가브리엘 천사와 마리아가 수도원 건축물의 규모에 비해 상당히 크게 그려졌는데 프라 안젤리코는 두 인물의 크기를 과장하게 나타냄으로써 신자들에게 수태고지의 극적인 효과를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안날레나 제단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성인들은 이들 각각이 살던 시대나 활동 내용과는 아무 상관이 없이 작품이 놓이게 될 위치나 작품을 주문한 사람과 연관이 깊습니다. 이 작품의 경우 피렌체를 지배했던 메디치 가문의 성인들로 왼쪽 끝 도미니크회 수도사 복장으로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순교자 베드로는 코지모 메디치의 아들 피에로의 수호성인입니다. 붉은 복장의 두 명은 선교를 위해 무료로 의술을 행하다 순교한 쌍둥이 형제 코스마스와 다미안으로 두 형제 또한 메디치 집안 전체의 수호성인들이며 오른쪽의 세 명의 인물들 역시 메디치 가문의 사람들과 연관된 수호성인물들입니다.
반원형 구도로 서 있는 사도 여섯 명은 전통적인 방식과는 달리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프라 안젤리코는 르네상스 미술의 영향을 받아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가운데 앉은 성모를 기준으로 양옆으로 이어진 단, 활모양으로 늘어선 인물들로 배치된 구도는 그림을 감상하는 이로 하여금, 그림의 일부가 된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한 장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고딕 미술에 의한 치밀하고 화려한 작품을 나타내면서 특유의 청아한 표현으로 피렌체 회화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프라 안젤리코 작품들을 알아보았습니다.